노무현대통령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

Home LOGIN JOIN
  • 사람세상소식
    • 새소식
    • 뉴스브리핑
    • 사람세상칼럼
    • 추천글
    • 인터뷰
    • 북리뷰
    • 특별기획
  • 노무현광장

사람세상소식

  • 새소식
  • 뉴스브리핑
  • 사람세상칼럼
  • 추천글
  • 인터뷰
  • 북리뷰
  • 특별기획

home > 사람세상소식 > 인터뷰

인터뷰

북경에서 3년 만에 돌아온 추모 방명록

2012.09.04

북경에서 3년 만에 돌아온 추모 방명록
회원 박경철님이 대통령 서거 당시의 북경 분향소 3일간의 기록을 전해왔습니다

“제가 너무 늦은 건 아닌가요? 우편보다는 제 손으로 직접 전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렇게 3년이나 지난 뒤에야 들고 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사는 세상’ 회원 박경철 씨가 3년 전 중국 유학생들이 쓴 추모 방명록과 분향소 안내지를 들고 얼마전 재단을 찾아 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중국에서 유학중이던 박경철 씨는 북경대학 연구생회(대학원생회) 동료, 인민대학교, 청화대학교 유학생들과 함께 북경시 오도구(五道區)에서 분향소를 운영했습니다. 방명록은 서거 3일 뒤인 2009년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유학생, 주재원, 중국인 대학생 등 조문객들에게 받은 추모글입니다. 박경철 씨는 북경대학교 연구생회 2대 회장을 맡고 있었다고 합니다.

2009년 5월은 박경철 씨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각인된 달입니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얽힌 일화입니다.

“그해 5월 4일 김대중 대통령께서 4박5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6일경에 북경대학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셨어요. 그런데 강연 즈음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갑작스레 장소가 바뀌었고, 애초의 넓은 강연장이 아닌 좁은 공간에서 강연이 이뤄졌거든요. 공지도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MB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뭔가 수를 쓰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셨던 분이 유학생에게 하는 강연조차 방해를 하다니….

그게 김대중 대통령의 대외적인 마지막 강연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남북관계의 중요성과 미래에 대해 유언 같은 당부를 하셨던 게 생각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으로 돌아온 약 2주일 뒤, 박경철 씨는 외신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습니다.

“평소 존경해왔던 노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를, 그것도 타국에서 접한다는 게,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설움이 밀려오더군요. 김대중 대통령님 강연 생각도 났구요. 연구생 신분이라 대외적인 활동이 어려웠지만 노 대통령님을 위해 뭔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좌파 딱지, 그러나 올바른 길을 걸어왔고, 잘 싸웠다고 생각한다”

당시 북경시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분향소가 설치되었지만 학교와 거리가 너무 멀었고, MB정부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 때문에 대사관 조문에 부담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MB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분위기가 점점 경직되어 가고 있었잖아요. 중국 유학생 사회에도 그 여파가 있었거든요. 위화감이 돌았다고 할까요. 다들 행동을 조심하는 분위기였죠.”

박경철 씨는 뜻을 같이 하는 유학생들과 함께 북경대학 인근 빌딩을 수소문하며 분향소 자리를 물색했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경제적인 형편도 넉넉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어렵게 찾은 곳이 오도구 한 건물의 빈 회의실이었는데, 하루 임대료가 당시 중국 돈으로 1천원, 원화로 약 17만원이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동포 한 분이 선뜻 돈을 보태겠다고 제안했고, 학생들도 십시일반 경비를 모아 분향소를 차릴 수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저와 함께 분향소 일을 도왔고, 유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물과 음료수를 짊어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분향소 운영 3일째인 28일 정식으로 제를 지내고 합동분향을 했어요. 벌써 3년이나 지났네요. 대통령님 탈상이라니….

중국 유학시절 동안 우리를 좌파학생이라며 어렵게 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모두가 이를 잘 극복하며 올바른 길을 걸어왔고, 잘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 대통령 서거 당시 박경철 씨와 유학생 동료들이 북경 오도구에 마련한 시민분향소. 전직 청와대 경호원이었던 남성이 대통령 영정에 경례하고 있다.(사진 왼쪽) ▼ 중국에서 함께 공부한 유학생들과 귀국 후 봉하마을을 찾았다.

귀국 뒤 봉하마을 첫 방문…“항일운동의 숨은 역사 알리고파”

박경철 씨는 5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난 7월말 귀국했습니다. 짐정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중국에서 함께 역사 공부를 하며 유학했던 친구들과 봉하마을도 다녀왔습니다.

“난생 처음 방문이었죠. 대통령님 귀향 당시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대던 기억이 나 뭔가 엄청난 게 있나 했는데 여느 농촌마을과 다르지 않더군요.”

박경철 씨는 대통령의 여러 모습 가운데 퇴임 뒤 귀향해 깨어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던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합니다. 지역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면서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친환경농사 등으로 농촌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고, 그것은 박경철 씨 꿈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밀짚모자를 쓴 대통령, 자전거 탄 대통령. 퇴임 뒤 보여주신 모습이야말로 저에게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미래상입니다.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왔으니 당분간은 이것저것 적응하고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아 바쁘겠지만 대통령님과 사람사는 세상에 좀 더 관심을 갖고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습니다.”

■ 에필로그 : 인터뷰 후 박경철 씨가 재단에 보내온 이메일
“항일투쟁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역사입니다”
지난 8월 24일(금)은 한중수교 2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냉전의 어둠을 뚫고 한국과 중국이 친구가 되어 어느새 성년을 맞이했습니다. 그간 한중 간 교류에 있어서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와 문화적 교류 이외 정치, 역사적 문제는 아직도 감정적인 골이 남아있고 쉽게 다가서기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제가 북경에서 유학했을 때 제 전공 이외에 한중 간 역사적인 문제에 관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특히 항일투쟁의 공통된 역사에 천착해 이를 발굴하고 알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한중 간 우호의 출발은 항일투쟁의 역사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게 제 지론입니다.

지난 2010년부터 매년 북경대 연구생회가 주도하고 인민대, 청화대 학생들과 함께 태항산 항일유적지 탐방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6월에는 3회째 역사탐방을 진행했는데 특히 한중 수교 20주년이라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마침 KBS 북경특파원께서 관심을 갖고 찾아와 이 과정을 모두 찍었습니다. ‘세계는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의 한 섹션입니다. 제 인터뷰는 잘렸는데 그래도 공중파에 방송된다는 것만으로 천만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한일 관계를 보듯 우리 항일투쟁의 역사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 ‘사람사는 세상’ 회원 박경철


‘한중 청년들, 조선의용대를 만나다’ 방송 다시보기

다음 글 목록

등록
1 page처음 페이지 1 2 3 4 5 6 7 마지막 페이지